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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종합

4.19혁명의 뿌리는 동학농민혁명이라 말한다.

오늘은 민주주의가 승리한 뜻깊은 4.19혁명이다. 한마디로 이승만정권 (제1공화국)을 끝장낸 사건이다. 4.19의거 또는 4월혁명이라 말한다.

1960년4월, 한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일어난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 되었으며, 엄밀히 따지면 2.28 학생민주의거와 3.15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4.19의 서막이다.

 

4.19혁명은 66년전인 1894년 동학혁명에 계보를 잇고있다. 민주주의 뿌리라 일컫는 이유는 그당시 기존 조선 양반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 사회 혼란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가, 1892년(고종 19년) 전라도 고부군에 부임된 조병갑의 비리와 남형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부패 척결과 내정 개혁이 4.19혁명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동학 교조 신원 등의 기치로 일어선 동학농민군 중 일부는 흥선대원군, 이준용 등과도 결탁했다. 전봉준은 대원군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명성황후와 민씨 세력의 축출을 위해 대원군과 손을 잡았다. 대원군 역시 명성황후의 제거를 위한 무력 집단이 필요했고, 동학농민군과 제휴하게 된다. 동학농민군 중 일부는 탐관오리 처벌과 개혁 외에 대원군의 섭정까지도 거병의 명분으로 삼은 바 있었다.

 

제1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총리는 기념사에서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은 10년 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됐다”며 “해방 이후의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월 항쟁도 동학정신에 뿌리를 두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결국 동학농민혁명은 - 3.1운동 - 광주학생독립운동 - 4.19혁명 - 5.18민주화운동 - 6월항쟁 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