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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도, 놀랍고도 장엄하다.

 

15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서양인들에게 아프리카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인도양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프리카의 형상은 왜곡이 심합니다. 이 지도와 우리의 강리도(1402)이미지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두번째 지도로 시선을 옮깁니다. 중세 이슬람 문명권을 대표하는 지도입니다. 1154년 모로코 출신의 이슬람 학자 알 이드리시(al- Idrisi)가 지중해의 시칠리섬에서 그린 것입니다. 중세 이슬람 지도의 전통에 따라 남쪽이 위에 가 있습니다. 보다시피 위쪽의 아프리카가 지구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중심에 아라비아 반도가 놓여 있습니다. 인도양은 열려 있고 아프리카는 환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세 서양의 세계상을 보겠습니다. 세번째의 Hereford 지도입니다. 영국 Hereford 성당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동쪽이 위로 가 있습니다. 중세 이슬람권에서는 남쪽을 위에, 기독교권에서는 동쪽을 위에 두었습니다. 동쪽을 위에 두면 맨 위쪽에 에덴 동산을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한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놓여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권의 세계상입니다.
 
이제 시선을 마지막 지도로 옮깁니다. 눈이 문득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강리도입니다. 북쪽이 위에 가 있고(이 점이 우수하다는 뜻은 아님) 인도양은 열려 있으며, 아프리카는 작지만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중심에 놓여 있는 중국이 압도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 오른쪽의 한반도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프톨레미 지도와 대조해 보면, 프톨레미 지도는 전체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좌우 폭이 과장되어 있고 지중해도 좌우의 폭이 실제보다 경도 20도 정도가 넓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땅도 몹시 왜곡되고 과장돼 있습니다.

반면에 강리도는 한반도와 중국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한편 알 이드리시 지도는 아프리카가 과장되어 있고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가 소재하는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명권에 따라 지도의 중심과 방위가 다르고 특별히 크게 그린 공간도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강리도는 당시의 시점에서 최대의 지리공간, 즉 아프로 유라시아의 세계를 자주적으로 재구성한 한국인의 세계상이었습니다. 우리 땅을 특별히 크게 그렸지만 자기 중심성에 매몰되지 않았고, 초광역적인 공간을 그리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조선 초 우리 선조들이 세계성과 주체성을 융합한, 영감으로 가득 찬 세계도를 남겼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15세기 우리 역사의 지평에서 탄생한 강리도와 한글은 실로 쌍벽을 이루는 세계사적 보물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컬쳐 트립 사이트는 강리도를 '놀랍고도 장엄한(Gorgeous and sublime)'지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까닭 없는 찬양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아무리 이렇게 강조해도 사실 강리도의 진가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매우 축소된 이미지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크기는 158cmx163cm로 상당히 큰 지도입니다. 실물 이미지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진면목을 알기 힘듭니다. 지중해 일대를 확대해 끌어와 보겠습니다. 진면목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