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김양식 회장) 주관으로 12번째 청주성전투희생자위령제를 무심천 동학장승공원에서 열렸다. 회원들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동학 실천운동 캠페인을 성안길에서 깃발에 실천 문구를 1.모든 존재에 친절하기. 2.먹을거리 조절. 3.일회용품 안쓰기. 4.에어컨 사용 절제. 5.저탄소 생활실천. 6.차량운행 자재 라고 써서 거리의 청주 시민들에게 알렸다.
청주지역은 지정학적 위치상 동학농민혁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이전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동학교단이 위치한 보은과 인접해 있어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또한 동학 지도자였던 서장옥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청주는 동학농민혁명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청주에는 조선의 충청도 군사령부격인 충청병영이 1651년부터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청주는 서울로 통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러므로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정부 입장에서도 동학농민군 입장에서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실제로 1894년 9월 이후 동학농민군이 여러 차례 청주성 점령을 시도하였다.
청주성전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를 새롭게 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9월 24일 시작된 전투는 9월 18일 동학교단의 기포령에 따라 전개된 것으로서 불과 6일 만에 수천 명의 동학도들이 봉기해서 충청병영이 위치한 청주읍성까지 점령하려고 시도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군 혼성제9여단 병력이 6월 21일 경복궁을 기습 점령해서 국왕을 인질로 잡은 이후 조성된 국난(國難) 극복이 주 목표였다. 경복궁을 점령당한 뒤 3개월 동안 동학 교단과 대접주들이 무장봉기를 준비하지 않았으면 9월 24일의 청주성전투는 일어날 수 없었다. 청주성 전투에서의 많은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매년 지내는 의미있는 행사이다.